4학년때 후배들에게 회지에 글하나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썼던 글입니다.
갑자기 컴 정리하다가 옛날 글을 발견했는데... 지금 읽어보니 재밋어서 올려봅니다.
아... 그때 너무 재밋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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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학개론
내가 1~2학년때까지만 해도... 과도관에서 쿠아인을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열람실에서 쿠아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야!~ 너 여기 왠일이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으니까.(그땐 이런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그러면.. ‘예쁜여자를 발견하고 쫓아오다 보니까 도서관까지 왔다’ 던가 그 비슷한 진짜이유들을 숨기기 위해 ‘레포트를 쓴다’라든지 ‘시험공부를 한다’라던지 하는 말도 안되는 가짜이유들을 만들어내곤 햇었다. 근데 요즘엔 24시간 열람실이 제 2의 동방이 된 것 같다. 시험기간에 밤마다 열람실에서 만난 쿠아인들끼리 야식을 먹으러 떼거지로 몰려가는 것이 이젠 쿠아의 새 풍속도가 되어 버렸다. 특히 과도관이 중도관보다 자리경쟁이 덜하기 때문에 과도관에 오면 평소엔 보기 힘들던 문대나 사대 친구들까지 만날 수 있어 이젠 도서관이 쿠아인의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참... 바람직한 현상이군. 쩝.
하지만... 과도관이 자리경쟁이 덜하다고는 해도 시험기간중에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3.4층 열람실은 7시 30분이면 자리가 차 버리고, 24시간 열람실은 밤 10시부터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그러나 아직도 학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도서관을 전전하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메뚜기’라고 부른다.
메뚜기를 하지 않아도 자리를 맡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24시간 열람실에 자리를 맡아놓고 집에 간다던지 하숙하는 부지런한 친구들에게 부탁한다던지.. 그러나 그럴만한 여건이 안되거나 혹 그러기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여기 내가 터득한 메뚜기의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한다. 실제로 나는 시험기간중에도 자리를 못맡았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거의 없다. 90% 이상의 확률로 내 집을 마련할 자신이 있으니까. 이제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자리만 봐도 이 자리의 주인이 어디서 뭘 하고 있으며 언제쯤 돌아올지 훤히 보인다(... 면 과장일까?)
원래 메뚜기라 함은 도서관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주인이 자리를 비운 빈 자리를 전전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다른 자리로 쫓겨 다니는 모양이 꼭 풀밭을 뛰어 다니는 메뚜기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메뚜기를 잘 뛰는 요령(=정공법)이라면 자리의 행색을 보아 부실한 자리 즉, 주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자리를 찾는 것이다. 원래 자리의 행색은 주인을 닮게 되어있어, 학구파 학생의 자리에서는 학구적인 분위기가. 술먹으러 간 학생의 자리에선 술자리의 분위기가 나게 되어 있다. 이런 자리를 잘만 고른다면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독차지하고 공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방법들은 이런 방법들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내집을 마련하는 방법들이다. 참고로 자리경쟁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니 쿠아의 후배들은 이글의 내용들을 외부인에게 발설하지 말지어다.
자리맡는 요령 1. 여러개 맡은 자리를 찾아라!
아마 여러분도 한번쯤은 친구에게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방법은 바로 이런, 자기 친구들을 위해 한 사람이 여러 자리를 한꺼번에 맡아놓은 자리를 찾아내고, 더 나아가 이런 자리들을 빼앗아 자기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덧붙인다면 자리를 맡아주는 행위는 도서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파렴치한 행위이므로 여러분은 이런 자리를 빼앗는데 있어서 조금도 망설이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더 나아가 이런 자리를 빼앗는 것은 도서관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는 중차대한 의미가 있음을 자각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기 바란다.(무슨 국민교육헌장 쓰는 기분이군)
이 방법의 포인트는 어떻게 이런 자리를 찾아내는 거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약간의 이론적 연구가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시스템이 있다. 바로 책, 연습장, 필기구, 가방 따위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연습장’과 ‘가방’에 주목하기 바란다. 보통 책이나 필기구들은 한사람이 여러 개(권)씩 가지고 다니지만 연습장이나 가방따위는 1인 1개씩이다. 즉 다시말해 연습장과 가방이 없는 자리는 공부를 위한 기본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자리라는 뜻이다. 이런 경우 물론 자리 주인이 잠시 수업을 들으러 갔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인접한 2개 또는 3개의 자리를 함께 살펴보는 요령이 필요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서 자리를 맡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반드시 그 자리를 맡은 사람이 앉아있게 마련이다. 도서관에서 인접한 두자리(또는 세자리) 중 한 자리에만 사람이 앉아있고 나머지 한자리는 비어있는 자리- 일단 이런 자리들을 중심으로 자리사냥을 시작하자.
이런 자리들을 발견하면 그 다음엔 인접한 자리와 묶어서 비교해 본다. 만약 두 자리중 한 자리에만 ‘가방’이나 ‘필통’이 놓여져 있다면 이런 자리는 확률 60%이다. 겨울철일 경우 파카나 잠바를 입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라. 어떤 사람이 파카도, 잠바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옆의 빈자리엔 주인없는 파카가 걸려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확률 70%란 의미이다.
이런 자리들을 찾아내면 바로 점령해도 무방하겠지만 보다 더 확실한 확인을 원한다면 가까이 가서 target인 자리와 옆에서 공부하는 용의자를 살펴보자. 이때 주안점을 둘 부분은 두 가지 - 교과서의 ‘학과’와 ‘필체’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그 빈자리에 있는 책이 같은 과의 전공서적이거나 같은 필체라면 이 자리는 확률 90%이다. (만약 같은 과인 다른학생의 자리라면... 같은 책이 2권 있겠지. 시험일정이 같을 테니까.)
이쯤 되면 눈치볼 필요가 없다. 살펴볼 때도 노골적으로 티를 팍팍 내라. 마치 ‘여기 니가 맡아놓은 자린 줄 다 알고왔다!’는 듯이. 그리고 과감히 책을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당당하게 앉아라. 그러면 십중 팔구는 그 사람이 와서 짐을 치워줄 것이다. 만약 치워주지 않더라도 계속 꿋꿋하게 앉아서 공부해라. 아마 한두시간 후 당신의 등뒤로 ‘니 자리 맡았었는데 ... 뺐겼어...’ 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때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해야한다.)
혹시 간혹... 뻔뻔스럽게도 와서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약간 화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게 거만하게 기대서, 짝다리를 짚고, 손으로는 샤프를 돌리면서... 그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하라. ‘이 자리... 직접 맡으셨어요? (이때 풍선껌을 씹어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아마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날 것이다. 만약 그사람이 ’네, 제가 직접 맡았는데요?‘라고 대답한다면.. .찍소리도 하지 말고 물러나와서 다른 자리를 찾아 봐라. 깨갱~
자리맡는 요령 2 ... 업그레이드 메뚜기 - 사마귀가 되자!
‘사마귀’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사마귀는 메뚜기를 잡아먹는다. 그렇다 도서관에서 메뚜기들을 쫓아내고 자리를 빼앗는 또다른 메뚜기들... 그들을 소위 ‘사마귀’ 라 부른다.
앞의 방법 1은 오전중에 그것도 10시 이전에 써먹어야 효과가 있다. 시간이 늦어지면 자리 주인이 나타날테니까. 글구 시간이 지나면서 메뚜기할만한 자리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메뚜기들끼리도 경쟁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럴때는... 사마귀가 되어 메뚜기를 잡아먹어보자. (이런 일은 평소에 ‘마피아’게임을 많이 해본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렇다면, 메뚜기를 어떻게 알아보느냐? 바로 ‘가방’이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사람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가방이 2개 놓인 경우가 있다. 이정도면 눈치챘겠지? 그렇다. 이사람은 메뚜기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쫓아내느냐? 어렵지 않다. 다만 약간의 ‘연기력’ 과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하다. (사마귀는 난이도가 꽤 높은 종목이다)
먼저 가방을 숨기고,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붙여라. ‘저기요...’ 하면 된다. 끝이다. 그 사람이 메뚜기가 맞다면 ‘죄송합니다’ 하고 알아서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다면 ‘이 자리...’ 까지 말을 꺼내 봐라. 거의 틀림 없다. 혹시 그 사람이 무서운 표정으로 ‘뭐요?’ 하면 어케하나? 그럴땐 ‘이자리 ... 에서 핸드폰 혹시 못 보셨어요?’ 같은 엄한 질문을 한 개 떤져주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돌아서라. 그리고 다른 사냥감을...
사마귀를 할 때 주의할 점은 성공하더라도 완전히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웃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긴장한 표정을 지어선 안된다. 엠티가서 선배들이 ‘마피아’게임 같은 걸 시키는 이유가 다 이런 데에 있다. 선배들의 깊은 속을 후배가 어찌 알리오~
간혹 재수없으면 메뚜기를 쫓아내기가 무섭게 진짜주인이 나타나, 내가 쫓아냈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다. 그러면... 개쪽이다. 사람들 키득키득 웃고. 원래의 메뚜기는 ‘모 이런놈이 있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 담부턴 메뚜기계(界)에서 매장이다.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여기저기서 쿡쿡거리면서 웃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으~
대신 사마귀를 성공했을 때의 그 스릴과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난 아무래도 변태기질이 농후한 것 같다.)
자리맡는 요령 3. 빈자리가 생기는 시간대 -> 오전시간대에 시험이 있는 시간을 집중공략하라.
아무리 시험기간에 자리가 다 찬 이후라도 빈자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 어디서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건데, 빈 자리가 많이 생기는 시간대 중 하나가 시험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특히 교양과목의 경우엔 듣는 사람들이 꽤 많고 오전에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날 시험보는 교양과목과 시간을 파악해 두고 20분쯤 전부터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과목을 공부하는 사람 근처에서 죽치고 있으면 자리를 얻을 확률이 크다. 시험기간이라 자리가 나더라도 몇분 가지 않으니 정보를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누가 그러더군. 내 특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심각한 척하는 거라구.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리를 맡으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서 24시간 열람실을 그 전날에 자리를 맡아 놓는다던지.. 난 개인적으로 이런 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자리독점이 하루단위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선 집이 멀다던가 해서 밤 11시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자리를 맡을 수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서 자리를 맡는다면 다음날 아침에 나보다 일찍 등교한 사람 하나가 자리를 맡지 못할 것이다. 그건 옳지 않다.
그리고... 위에서 대충 설명한 것처럼 메뚜기만 잘 해도 공부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어쩔수 없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란 얘기다. 다만 공부를 좀 더 편하게 하고자 합리화하는 말들일 뿐이다.
아마 이번학기에도 어김없이 자리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시험기간엔 짐을 치우니까 덜하겠지만 평소엔 또다시 자리 독점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자리를 독점해놓으면 다소간은 공부하기는 편하겠지만... 별 큰 가치도 없는 일로 자기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아닌지.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 자리독점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새 학기에는 24시간 열람실에 쿠아인의 지정석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참 글구... 위의 사마귀 어쩌구 한 얘기는 픽션이다. 글치만, 이 글에 써져있는 대로 하다가 쪽당했다고 나한테 와서 따지면.. 아마 나한테 밥을 한끼 얻어먹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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