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Treasure Island 2009. 6. 8. 17:16
  전에 한 선배가 블로그에 이런 출사표를 올린 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저도 쓰게 되는군요. ^^

  저는 첫 직장이었고, 내 청춘의 7년 반 정도를 바쳤던 삼성SDS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그룹장님까지 면담이 끝난 상황입니다. (이미 알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시더군요. ^^)

  제가 이직을 결심한 것은 개발자로서 다른 분야의 기술에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삼성SDS에 입사해서 처음 3년 정도는 CERT생활을 했고, 보안솔루션 개발을 해보고 싶어 현재의 팀으로 부서전배를 한 후 4년 반 정도 솔루션 개발을 경험했습니다. 역시 솔루션 개발은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 매력적인 일이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여를 개발을 해온 만큼 이제 어느정도 내공도 쌓였지요. 지금까지 해온 네트워크 보안이나 Database, 데몬 개발 등이 흥미있는 분야의 기술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에 했던 네트워크 보안솔루션 개발이나 현재 하고 있는 데몬 개발 업무에서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이 팀에 전배올때부터 마음속에 그려 왔던 "드라이버 개발"이라는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갈증이었습니다. 

  처음 개발자의 길에 들어설 때부터 내 마음속에서 도전하고자 했던 바는 "Windows Kernel"에 정통한 드라이버 개발의 고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개발자로서의 내 성향 역시 고민끝에 문제를 해결하거나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성취감보다는 모르는 것을 공부해가면서 하나씩 레벨업해가는 만족감,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지요. 그동안 저는 끝없이 공부하면서 "Windows Internals"를 한글자씩 탐독하고, "Debugging Application~"을 음미하면서 날마다 어셈블리어와 씨름하는... 그런 생활을 동경해 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이 조금씩이나마 이쪽을 지향해왔지만, 개발자로서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가고 어느정도 경력을 쌓아 가면서 새로운 분야에서 새출발을 한다는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담이란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나를 뽑아주어야 할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보안솔루션 개발경험은 있지만 드라이버에는 문외한인 나를 신입사원의 두배 가까운 연봉을 주고 드라이버 개발자로 고용해줄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아내와 한달 후에 태어날 우리 아들, 그리고 경제한파... 여러가지로 이직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적당한 회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버 개발자의 자리가 비어있으면서 내가 일을 익힐 동안 기다려줄 여건이 되고, 날 가르쳐줄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2~3년간 고생하고 나면 드라이버 개발자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회사에 다니고 계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이 회사 자체는 그리 전도유망한 회사도 아니고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도 아닙니다. 이직하는 내 연봉조건 역시 썩 좋지는 않습니다. 삼성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삼성에 있을 때모다 더 적은 수령액으로 계약했다면 절대 좋은 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이 부분때문에 아쉬워하고 걱정해주신 선배님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쉬움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제 생활 신조 중 하나는 "해보지 않고 아쉬움을 남기는 것보다는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낫다" 입니다. 이번 결정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분야를 정복해보아야 나중에 개발 분야에서 손을 놓게 되었을 때 아쉬움 없이 손을 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이해 하실라나요.
  
  이렇게 까지 무리하면서 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앞서 얘기한 지적인 호기심에 대한 충족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이 분야의 기술이 나름대로 공부해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드라이버 개발은 분명히 공부하기 어려운 분야이고, 진입장벽이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있기에 그만큼 도전해 볼 매력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사실 S/W 개발은 진입장벽이 너무 낮은 분야입니다. ㅜ.ㅜ) 또한 이 분야는 거의 모든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서의 요소기술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백신이나 PC보안 분야 뿐만 아니라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OS가상화 및 어플리케이션 가상화, SBC (Server Based Computing) 같은 새로 등장하고 있는 분야 역시 드라이버 개발자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런 분야들이 현재까지는 주로 Hooking 위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가상화를 구현하려면 드라이버 레벨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실 몇가지 유저모드에서의 API Hooking을 제외하면 Hooking 역시 드라이버의 힘을 빌려야 가능한 기술입니다. 기존의 보안시장이나 백신 시장 역시 사무환경이 모바일화되어 감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 개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도 도전할 분야가 생길 것이라 봅니다. 

  아직 어떤 것이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쪽 분야가 새롭게 도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최근의 경기 불황으로 인해 (대세는 변함없겠지만), 그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까지가 사람들의 예상보다 3~4년 정도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지금 뛰어들어도 늦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지요. 

  삼성이라는 곳은 온실과 같습니다. 여기 있으면 너무 따뜻하고 배도 부릅니다. 지금 바깥 세상에서는 전례 없는 강추위가 몰아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이 따뜻한 곳을 떠나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세상에 나가 무림의 고수들과 제대로 한판 대결을 펼쳐보려 합니다. ^^
  그동안 저를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신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 걱정하고 말려주신 선배님들께는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미친듯이 살아보렵니다. 재미있게 도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되든 후회없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훗날 바깥 세상에 나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초심이 흐트러질 때 다시 읽어 보기 위해 이 출사표를 씁니다.

  여러분 부디. 저를 응원해주세요. ^^

  




Posted by kua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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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편안히 잠드소서